미래의 연대기,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 체르노빌의 목소리
  • 임효진 기자
  • 승인 2017.03.10 06: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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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6주기, 체르노빌 원전 사고 경험자 인터뷰로 다시 보는 원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지 올해로 6년째다. 처음에는 뒤숭숭한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사람들이 살아간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을 때도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밭에 있는 싱싱한 채소를 따 먹고, 방목한 소에서 젖을 짰다.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소련의 핵 원자로가 불완전해서 일어난 거라고, 기술이 낙후해서라고 결론 지어 버렸다. 그리고 5년 뒤에 급증한 암 환자에 대해서는 아무도 집중하지 않았다. 인구 1천만 명의 평화로운 농업 국가였던 벨라루스는 원전이 하나도 없었지만 가장 큰 피해를 봤다. 국토의 70%가 방사능으로 오염됐고 485개 마을이 사라졌다. 사고 이전에 10만 명 중 82명에 불과했던 암환자는 6천명까지 치솟았다. 벨라루스 국민의 5분의 1이 여전히 오염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20년에 걸쳐 발전소에서 일했던 사람들, 과학자, 의료인, 군인, 이주민,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는 그 결과물이다.

“나는 체르노빌의 증인이다. 무서운 전쟁과 혁명이 20세기를 대표한다고 하지만 체르노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20년이나 흘렀지만, 내가 증언하는 것이 과거인지, 또는 미래인지, 나는 아직도 나 자신에게 묻고 있다. 그 사건은 너무나도 쉽게 진부한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시시한 공포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체르노빌을 새로운 역사의 시작으로 본다.…우리 땅에 흩어진 방사성 핵종은 5만, 10만, 20만 년, 아니 그보다도 더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저자의 독백 인터뷰 글 중 -

“구역으로의 첫 방문. 거기로 가는 길에 모든 것이 회색 재로 덮여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까맣게 그을린 채로. 그런데 도착해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황홀했다! 봄의 초원에 꽃이 폈고, 숲의 녹음은 부드러웠으며 봄 향기를 내뿜었다. 나는 이 계절을 정말 좋아한다. 모든 것이 되살아나고, 자라며 노래하는.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바로 아름다움과 두려움의 어울림이었다. 두려움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에서 두려움을 구별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대였다. 죽음의 낯선 얼굴이었다.”
-게나디 그루세보이 벨라루스 의원 인터뷰 글 중-

“저는 비가 무섭습니다. 바로 그게 체르노빌입니다. 눈이 무섭습니다. 숲도, 구름도, 바람도 무섭습니다. 체르노빌, 그는 내 집에 있습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 1986년 봄에 태어난 내 아들 속에 있습니다.”
-알렉산드르 레발스키 역사학자 인터뷰 글 중 -

“우유를 검사했다. 단 한 차례의 검사로 우리한테 들어온 것이 고기가 아니라 방사성 폐기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이미 똑같은 제품이 상점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용기 겉면 스티커에 생산지가 로가체프라고 적힌 걸 본 사람들이 구매하지 않아 재고가 많이 남았는데, 갑자기 스티커가 안 붙은 제품이 등장했다. 내 생각에는 종이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속이기 위해서였다. 국가가 속였다.”

“처음 구역에 들어갔을 때, 숲 속의 방사선 수치가 들판이나 도로의 다섯, 여섯 배였다. 트랙터가 움직이고 있었다. 농부들이 자기 텃밭을 갈고 있었다. 한 마을에 들어가 어른과 아이들의 갑상샘을 점검했다. 정상 수치보다 100, 200, 300배나 더 높았다.”

“상점에 들어가 보니 원래 시골 가게가 그렇듯 공산품과 식품이 한 곳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양복, 원피스 옆에 소시지와 마가린이 진열되었다. 비닐로 덮어두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있었다. 소시지와 달걀을 샀다.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식품이 아니라 방사성 폐기물이었다.”
- 마라트 필립포비치 코하노프 전 벨라루스 과학 아카데미 핵에너지 연구소 선임 연구원 -

지난해 활성 단층이 있는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지만, 원전은 ‘안전’하다는 말에 걱정은 잊혀졌다. 일본은 원전 사고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체르노빌, 후쿠시마도 결코 사고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이제 인류 모두의 숙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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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가영 2017-03-24 15:03:04
항상 방사능이 불안한데, 주변인들을 보면 아무걱정이 없어서 걱정하는 내가 이상한건지 생각할때도 있었어요.. 한국원전도 안전한지 걱정이네요